평범한 증상, 놓쳐버린 순간
진료실에 앉아있는 환자는 5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그는 피곤함과 가벼운 소화불량을 호소했다.
문진을 해보니 직장 생활이 바빠 식사를 불규칙하게 하고, 최근 몇 달 동안 체중이 조금 줄었다고 했다.
하지만 특별한 통증도 없고, 혈액검사도 큰 이상이 없었다.
나는 단순한 위염일 것이라 생각하고 소화제와 생활습관 교정에 대한 조언을 건넸다.
그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다음 환자를 불렀다. 그날 진료는 평범했고,
그의 얼굴도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다시 만난 환자, 바뀐 상황
몇 개월 후, 같은 남성이 다시 내원했다. 하지만 이번엔 얼굴이 창백했고, 눈빛에는 피로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체중이 더 빠졌고, 밤마다 이유 없이 식은땀을 흘린다고 했다.
이쯤 되니 단순한 위염으로 넘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급히 추가 검사를 진행했고, CT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위암 진행성 소견 보임."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지난번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더 깊이 들여다봤어야 했다.
체중 감소와 소화불량이라는 단순한 증상을 가볍게 넘겼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땐 위내시경을 추가로 권유했어야 했다. 환자는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의사 선생님, 너무 늦은 건가요?"
후회와 교훈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내 심장은 크게 요동쳤다. 나는 냉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천천히 설명했다.
아직 수술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치료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들었다.
진료가 끝나고도 나는 한동안 책상 앞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의사는 항상 최선을 다하지만,
때로는 중요한 신호를 놓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통해 배우고, 더 나은 진료를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환자의 사소한 증상도 가볍게 넘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진료실에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더 깊이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