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속에서 태어난 둘레의 질서: 위성의 과학
우주는 탄생부터 불안정과 폭력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위성의 기원은 그 격렬한 역사 속에서 시작된다.
지구의 위성인 달은 약 45억 년 전, 화성 크기의 천체 ‘테이아’가 원시 지구에 충돌하면서 튕겨져 나온 잔해들이 중력으로 재조립되어 탄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거대 충돌 가설은 단순히 물리적 충돌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파괴에서 창조로 이어지는 우주의 고유한 문법이며, 무질서 속에 깃든 자기조직화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목성의 유로파, 토성의 엔셀라두스처럼 얼음 속 바다를 품은 위성들은 또 다른 생명의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이는 위성이 단순한 종속체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씨앗임을 뜻한다.
위성은 ‘주변부’이지만, 때로는 중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다.
우리가 그것을 주목하는 순간, 과학은 주변에서 의미의 중심을 발견한다.
중심을 돌며 침묵하는 철학자: 위성의 사유
위성은 늘 궤도를 돈다. 그러나 그 반복 속엔 단조로움이 아니라 철학이 숨어 있다.
위성은 자신이 아닌 타자의 중력에 묶여, 자율성과 의존성 사이에서 존재한다.
그것은 중심을 둘러싸는 궤도이면서도, 동시에 중심을 안정화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달이 없다면 지구의 자전 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빠르고 불규칙했을 것이며, 조석 현상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성은 ‘내가 존재하기 위해 타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관계라는 본질적 구조를 드러낸다.
이는 인간 존재와도 닮아 있다. 우리는 독립된 자아로 살아가지만,
사실은 수많은 중력—타인의 말, 시선, 기억—속에 이끌리며 존재를 유지한다.
위성은 자신을 잊게 만들 만큼 조용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관계의 본질’이라는 깊은 질문이 깃들어 있다.
반사된 빛의 자아: 존재론적 위성의 거울
위성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심의 빛을 반사해 밤하늘을 밝히고, 때로는 태양을 가리며 그림자를 만든다.
그 존재 방식은 단순한 종속이 아니라, 빛의 반사체로서 또 다른 자아의 형상이다.
달빛은 태양빛을 반사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새벽의 희망으로 기억하고, 시인의 영감으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위성은 '타자의 빛을 통해 드러나는 나'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제기한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는가, 아니면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존재하는가?
인간 역시 스스로를 인식할 수 없으며, 타인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감지한다.
위성은 이 점에서 존재의 거울이자, 고요한 철학자이다.
그 경이로움은 단지 외형이 아닌, 존재의 방식에 있다. 우리는 위성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사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