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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환자의 마지막 진료, 그날은 평범했다.

by judabibi 2025. 3. 17.

어느 환자의 마지막 진료, 그날은 평범했다.
어느 환자의 마지막 진료, 그날은 평범했다.

 

 

뜻밖의 만남, 평범했던 하루

진료실 문이 열리고 한 남성이 들어왔다. 60대 후반, 마른 체격, 조용한 눈빛. 차트를 보니 그는 처음 방문한 환자였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피곤이 가시질 않아요. 밥맛도 없고, 어쩐지 체중도 빠진 것 같고요." 흔히 볼 수 있는 증상들이었다.

나는 몇 가지 추가 질문을 던졌다.

언제부터였는지, 통증은 없는지, 배변 습관의 변화는 없는지.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큰 병은 아니겠죠? 그냥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겠죠?"

나는 환자의 눈을 보았다. 안심을 구하는 듯한 눈빛. 그러나 나는 단순한 노화 현상으로 치부하기엔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 없는 피로와 식욕 저하는 흔한 증상이지만, 때때로 중대한 질환의 신호가 되기도 한다.

기본적인 혈액검사와 함께 복부 초음파, CT 검사를 예약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

며칠 뒤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간 수치가 정상이 아니었고, 복부 CT에서 간에 몇 개의 결절이 발견되었다.

추가적인 정밀 검사가 필요했다. MRI를 진행한 결과, 진단은 명확했다.

말기 간암. 이미 다른 장기로의 전이가 진행된 상태였다.

진료실에 들어온 그는 나를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별일 없겠죠, 선생님?"

나는 순간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침착하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간에서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현재 상태로 보아 치료 계획을 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그러다 이내 다시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암이군요." 마치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담담했다. 나는 그 반응에 순간 당황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충격을 받거나, 믿지 못하겠다는 듯 부정한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얼마나 남았을까요?"

그의 질문에 나는 솔직해야 했다.

"현재 상태로 보면, 완치보다는 증상을 조절하며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정확한 예측은 어렵지만… 평균적으로 6개월에서 1년 정도 예상됩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선택과 삶의 의미

"치료하면 조금 더 살 수 있나요?"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항암 치료를 하면 생명을 연장할 가능성이 있지만, 부작용이 클 수도 있습니다.

반면,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몸이 점점 약해질 것입니다."

그는 손을 깍지 낀 채로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저는 아내와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병원 침대 위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지는 않아요."

완치가 어려운 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생명을 연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의 질을 고려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환자의 의지가 확고했기에 나는 완화 치료(palliative care)를 중심으로 논의했다.

통증을 조절하고, 불편함을 최소화하며,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였다.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 전 행운아인 것 같아요. 저에게 이런 선택을 할 시간이 있으니까요."

그 후 몇 달 동안 그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친구들을 만나고, 가끔씩 병원에 와서 나를 보며 근황을 전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부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남편이 편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선생님께 감사했어요."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진료실 창문을 바라보며 그의 미소를 떠올렸다

. 그리고 다시 한 명의 환자를 맞이하기 위해, 깊은 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의사는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때때로 우리는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환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