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하늘을 향해 달리는 지구, 그리고 존재의 궤적
앞서 걷는 지구, 마주 오는 빛의 파편들
지구는 매 순간 태양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시속 약 10만 km로 공전하며 우주를 가로지른다.
이 거대한 질주는 매일 밤 우리에게 하나의 경이로운 현상을 선물한다.
바로 ‘새벽에 더 많은 별똥별’을 보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한 천문학적 우연이 아니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우리의 위치가 변하기 때문이다.
밤 9시 무렵,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은 지구의 후방이다. 말하자면, 이미 지나온 우주의 흔적을 등 뒤로 보고 있는 셈이다.
반면, 새벽 3~5시 사이, 우리는 지구가 ‘돌진하고 있는 방향’을 바라본다.
공전 중인 지구의 정면. 바로 이 ‘앞면’은 우주를 가로지르는 입자들과 더 많이, 더 먼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새벽은 유성—별똥별이라 불리는 우주 먼지들이 대기와 마찰하여 빛나는 순간들—이 가장 많이 쏟아지는 시간대가 된다.
새벽이라는 시간, 소멸이 빛나는 순간
별똥별은 대부분 혜성이나 소행성에서 흘러나온 작은 파편들이다.
그 크기는 보통 모래알만 하며,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공기와의 마찰로 고온에 이르고, 불꽃처럼 타오르며 사라진다.
이 짧은 순간의 소멸은 찰나의 빛으로 나타나고, 우리는 그것을 '별이 떨어진다'고 느낀다.
그러나 실은 별이 아닌, 아주 오래된 파편—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물질 중 일부가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다.
새벽의 하늘에 그것들이 더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지구가 그들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방향성과 시간성의 교차점이며, 물리학적으로도, 존재론적으로도 깊은 함의를 가진다.
새벽은 하루 중 가장 고요하지만, 그 고요 속에서 가장 많은 충돌과 가장 짧은 빛의 생명이 일어난다.
별똥별의 궤적, 존재의 궤적
유성은 단지 우주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유성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지만, 대기라는 마찰의 배경 속에서 그 잠재된 열정을 드러낸다. 이는 인간 존재와 닮아 있다. 외부 환경과의 마찰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별똥별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그 짧음 속에 각인되는 인상은 오래간다.
마치 어떤 인연이 그러하듯, 오래 함께 있지 않아도 깊은 흔적을 남기는 존재. 그것이 별똥별의 방식이며,
또한 인간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새벽이라는 시간은 우리가 끝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점이다.
이 모순 속에서 유성은 말없이 내려온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어둠 끝에서 가장 많은 별이 쏟아지는 이유는, 그 어둠이 곧 새벽의 입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