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계의 바깥에 선 존재, 정의의 틈에서 살아남는 법
한때 행성이었던 천체
1930년, 미국의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는 망원경을 통해 작은 천체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그 천체를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이라 선언했고, 그 이름은 고대 로마의 저승의 신, **플루토(Pluto)**에서 따왔다. 이 작은 세계는 이후 76년간 정식 ‘행성’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은 ‘행성’의 정의를 재정비하며 명왕성의 자리를 박탈했고, 그 결과 명왕성은 ‘왜소행성(dwarf planet)’으로 강등되었다.
이 결정은 전 세계적으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단지 분류의 문제가 아닌 존재의 정체성과 가치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촉발했다. 왜 명왕성은 더 이상 행성이 아니라고 말하는 걸까?
행성을 위한 세 가지 조건
국제천문연맹은 행성을 다음 세 가지 조건으로 정의했다.
①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할 것,
② 자체 중력으로 인해 구형을 이룰 것,
③ 공전 궤도 주변을 깨끗이 정리했을 것.
명왕성은 1번과 2번 조건은 충족한다. 그러나 세 번째, 즉 공전 궤도 주변의 다른 천체들을 중력적으로 제거하거나 지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행성으로 분류될 수 없었다.
명왕성의 궤도에는 자신보다 비슷하거나 더 작은 카이퍼대 천체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는 곧 명왕성이 궤도의 주인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뜻이며, 과학적으로는 중력 우세권이 부족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명왕성은 ‘왜소행성’이라는 새로운 분류 아래, 행성의 경계 너머로 밀려났다.
정의에 밀려난 존재가 말하는 것
그러나 ‘정의’는 절대적인 것일까?
명왕성은 사실상 어떤 것도 바뀌지 않았다. 이전처럼 태양을 돌고 있으며, 자신만의 위성(카론)을 거느리고 있고, 표면에는 질소 얼음과 메탄 대기가 있으며, 내부에는 바다로 추정되는 액체 층도 존재한다. 달라진 것은 오직 인간이 내린 정의의 프레임뿐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중요한 성찰과 마주하게 된다. 존재의 정체성은 외부의 기준에 의해 정해지는 것인가? 아니면 존재 그 자체의 성질에 의해 결정되는가? 명왕성은 바로 이 경계의 모순을 보여주는 우주적 상징이다. 기준이 바뀌면 존재도 바뀌는 것일까, 아니면 정의가 바뀌어도 존재는 그대로인가?
우주의 틈에서 말 없는 항의
명왕성은 지금도 태양계 외곽을 천천히 돌고 있다. 그 궤도는 타원형이며, 때로는 해왕성보다 태양에 더 가까워지기도 한다. 과학적으로는 비정상적이고, 규칙에서 벗어난 궤도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독특하고 기억에 남는다.
명왕성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은 묻는다. “내가 나를 증명해야만 존재하는가?”
그 존재는 우리에게 삶의 경계, 사회의 정의, 정체성의 인정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행성이 아니라고 선언된 그 순간, 명왕성은 과학의 뒷편에서 오히려 존재론적 중심으로 부상했다. 그것은 외면당함으로써, 더 깊은 시선을 얻었다.
행성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세계
NASA의 뉴허라이즌스 탐사선은 2015년 명왕성에 접근해 처음으로 그 표면을 자세히 관측했다. 그곳에는 **심장 모양의 평원(툼보 지역)**이 존재했고, 예상 외로 복잡하고 역동적인 지형이 펼쳐졌다. 이는 명왕성이 ‘작고 외진 곳’이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천체임을 입증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행성이 아니라고 해서 세계가 아닌 것은 아니다.
명왕성은 우리에게 말한다. 이름을 빼앗겨도, 궤도를 벗어나도, 나의 길을 잃은 것은 아니라고. 중심이 아니더라도, 우주는 나를 빼고 완성될 수 없다고.